클로즈업도 없다. 종횡무진하며 인물과 공간의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비춰주는 카메라워크도 없다.
시신경이 느슨해질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장면과 장면 사이를 매끄럽게 건너뛰는 현란한 편집도, 록시의 허름한 방에서 벨마의 쇼 무대, 어두운 감옥, 변호사 빌리의 고급스런 사무실과 법정으로 자유자재로 바뀌는 세트도 없다.
하나의 세트에서 라이브로 펼쳐지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는 화려한 조명과 음악, 르네 젤 위거라는 배우의 요염하고 귀여움으로 전세계를 열광 시켰던 영화 와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때문에 뮤지컬을 보겠다는 사람들은 뮤지컬 스케일에 다소 실망할지도 모른다.
잘 알려졌다시피 뮤지컬 의 내용은 1920년대의 시카고, 각각 다른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보드빌 스타 벨마 켈리와 스타 지망생인 록시 하트, 두 여성의 재판과정을 통해 쾌락과 욕망의 베일에 쌓인 당시 미국사회의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원작은 뮤지컬. 경쾌한 빅밴드 재즈의 선율과 리듬이 피부로 다가오는 감동의 순간이 분명히 있고 6명의 여성 댄서가 핀 조명 아래서 철창도 없이 의자만을 소품 삼아 육감적인 동작의 유희를 펼치는 라이브 무대 한 장면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영화와 뮤지컬을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이 두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도 한다면 바로 캐릭터들이다. 영화 속의 록시는 그야말로 ‘백치 금발’ 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의 미국 여자 라고 생각된다면 뮤지컬의 록시는 스스로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자의식의 강한 여인으로 보여진다. 영화 속의 록시가 모든 인기와 명성을 잃고 난 후 화를 내는 반면 뮤지컬 속 록시는 그런 인생의 법칙에 대해 허무함과 무상함을 느끼기 때문에 더 큰 공감이 간다.
또 영화의 포커스와 록시와 빌리에게 맞춰져 있는 반면 뮤지컬 속에서는 록시, 빌리 이외에도 벨마, 마마 같은 캐릭터가 중요 인물로 다뤄지고 많은 노래를 부른다. 에이머스와 미스 페일린의 존재감 있는 연기와 노래도 뮤지컬 캐릭터의 힘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단언컨대, 이 배우들의 캐릭터들과 탄력적인 육체의 역동성, 관능적인 움직임을 잘 포착한 안무와 재즈 음악의 생생한 호흡은 뮤지컬에서만 맛 볼 수 있는 현장감 넘치는 장면을 선사할 것이다.